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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기록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룰루 밀러-곰출판)

by nice dream 2023. 11. 21.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 룰루 밀러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뭔가 혼란스럽다. 어제도 생선을 먹었는데.
내가 아는 물고기와 이 책에서 말하는 물고기는 다른 것을 뜻하는 것일까?
과학 분야의 책에 뭔가 도발적인 제목 같아서 이 책을 읽어보았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과학 서적은 아니다. 나에게는 한 인간에 대한 이야기이며 치유와 이해에 대한 이야기로 읽혔다. 
 
작가인 룰루 밀러는 혼돈이 찾아왔을 때 어떤 분류학자를 떠올리는데 그의 이름은 '데이비드 스타 조던'이다. 그는 당대 인류에게 알려진 어류 중 5분의 1을 발견한 사람으로 어류의 분류학에 큰 업적을 남긴 사람이다. 작가는 그의 회고록을 읽으며 그의 일대기를 추적해 나간다.

  데이비드는 마침내 그 이름들을, 라틴어로 된 승리의 선언이자 통달의 선언을 큰 소리로 발음하게 되었을 때의 감각을 이렇게 묘사했다. "그 이름들은 내 입술에 얹힌 꿀과 같았다."

  
형의 죽음 이후 데이비드는 수집에 집착하게 된다. 그리고 표본에 수집을 위해 루이 아가시 교수가 있는 페니키스 섬으로 간다. 아가시 교수는 생물들에게는 어떤 위계가 있다고 생각하고 이 모든것은 신의 계획 하에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인간도 자신의 저열한 충동에 저항하지 못하면 퇴화되어 어류의 수준까지 내려갈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그는 가장 높은 위치에 있는 피조물들조차 조심하지 않으면 그 위체어서 떨어질 수 있으며, 나쁜 습관들이 어떻게든 한 종을 육체적으로도 지적으로도 쇠퇴하게 만들 수 있다고 우려했다.

 
데이비드는 스탠퍼드 대학의 초대 학장이 되고 그곳에서 해양 연구 시설을 새로 만들고 친구들과 예전 제자들을 스탠퍼드 과학부에 채용한다. 이곳에서 본격적인 표본 채집과 이름을 붙이는 작업을 계속 해나간다.

철학에는 어떤 것들이 이름을 얻기 전 까지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보는 사상이 있다.
(중략)
이렇듯 아이디어를 상상의 영역에서 세상의 역역으로 끌어오는 운송 수단인 이름 자체는 엄청난 힘을 갖고 있다. 그런데 이 사상에 따르면, 이름이 존재하기 전까지 개념들은 대체로 불활성 상태에 있다고 한다.

 
 수많은 물고기의 표본들이 데이비드를 거쳐서 이름을 갖게 되었다. 그중에서는 조던의 이름을 딴 '아고노말루스 요르다니'라는 표본도 있다. 
1906년 샌프란시스코에 대지진이 일어나 데이비드의 표본들이 전부 망가지고 만다. 데이비드는 망가진 표본들을 보고 절망한 것이 아니라 살릴 수 있는 것은 최대한 살리도록 하고 더 이상 지진 같은 것들이 표본을 망가뜨릴 수 없도록 바늘로 표본에 이름표를 곧바로 꿰맨다. 이 무모하고 파괴적인 행동은 저자의 관심을 끌게 됐고 저자가 데이비드에게 집착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데이비드의 진짜 정체가 드러나게 되는데 이 부분은 약간 추리소설을 읽는 듯한 느낌이다. 그는 자신의 지위를 유지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또한 대학 설립자인 제인 스탠퍼드의 죽음과도 연관이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녀가 죽었을 때 많은 의사들이 독살을 의심했지만 데이비드는 협심증으로 덮어버렸다. 표본을 모으기 위해 물고기들에게 독을 쓰기도 했는데 그가 즐겨 쓰던 독 성분이 제인의 몸에서 검출되었다. 물론 의심을 사실로 결정지을만한 증거가 없긴 하지만 그의 행동을 봤을 때 충분히 합리적으로 그가 연관되어 있음을 생각할 수 있다.   

조류는 존재한다.
포유류도 존재한다.
양서류도 존재한다.
그러나 꼭 꼬집어, 어류는 존재하지 않는다.

 
작가가 생각한 데이비드의 일생에서 가장 큰 형벌이다. 데이비드의 분류학이 이런 치명적인 발견으로 이어졌다. 우리가 어류라고 하는 것들은 사실상 겉보기에는 비슷할지 몰라도 각자 수많은 차이가 있고 어떤 종류는 포유류에 더 가깝다고 한다. 바다와 같은 특정한 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해 비슷한 모습으로 진화했을 뿐 내부는 서로 확연한 차이가 있다는 것이다. 이 모든 것을 어류라고 넣어버리면 인간도 마찬가지로 어류가 된다. 
  
작가는 스스로 혼돈 속에서 나아가기 위해 데이비드의 일생에 집착한다. 그리고 그에 대해 알아가면서 충격적인 진실과 마주하게 되는데 그런 과정을 거치며 서서히 치유받고 새로운 깨달음을 얻는다. 에세이 같기도 하고 추리소설 같기도 하고 어떨 때는 과학서적 같기도 하지만 어찌 됐든 술술 잘 읽히면서 여러 가지 생각할 점을 던져주는 책임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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