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말했지, 호랑이를 죽이는 건 선택의 여지가 없을 때 만이라고. 그리고 그건 호랑이 쪽에서 먼저 너를 죽이려고 할 때뿐이다. 그럴 때가 아니면 절대로 호랑이를 잡으려 들지 말아라. 알겠느냐?
호랑이는 예로부터 우리나라를 상징하는 동물로 여겨져왔다. 지금은 일제강점기 때 모두 멸종하여 자연상태에서는 찾아볼 수 없지만 오랜 기간 동안 우리 민족과 함께 지내온 동물이다. 때로는 무섭기도 하고 어떨 때는 우스꽝스러운 호랑이의 모습들이 여러 가지 이야기로 전해 내려 온다.
이 이야기는 한겨울 자식들을 위해 사냥을 나선 한 사냥꾼의 이야기로 시작된다. 발자국을 보고 표범인 줄 알고 추적해 온 동물이 표범이 아니라 어린 호랑이임을 알고 사냥꾼은 어릴 때 아버지로부터 들었던 이야기를 기억해 낸다. 호랑이가 먼저 너를 죽이려고 할 때 아니면 절대 호랑이를 잡아서는 안된다는 것. 호랑이를 놓아준 사냥꾼은 눈에 파묻혀 죽을 위기에 처하지만 사냥하러 나왔다 길을 잃은 일본군인들에 의해 구조되고 호랑이의 습격으로부터 일본인들을 도와주게 된다. 그리고 일본군 야마다 대위는 무슨 일이 생기면 자신을 찾아오라면 은제 담뱃갑을 선물로 준다.
이 소설은 크게 두 가지 축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어머니에 의해 기생집의 하녀로 일하러 가지만 본인의 선택으로 기생의 길을 가게 되는 옥희의 이야기와 사냥꾼의 아들인 정호의 이야기이다. 두 사람의 이야기를 통해 일제강점기부터 해방과 전쟁 등 굴곡진 우리나라의 근현대사를 배경으로 이야기가 펼쳐진다. 그리고 두 사람의 사이에 관계되는 여러 인물들들의 이야기를 읽으면 실제 역사에 존재했던 여러 사람들의 모습이 스쳐간다.
나 같은 경우는 역사소설을 읽으면 위대한 업적을 이룬 위인들이나 주요 인물들보다 실제로 그 시절에 살았음직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읽으며 더 재미를 느끼는 편인데 이 소설에서도 여러 사람의 이야기를 읽을 수 있다.
3.1 독립만세운동 당시 열정적으로 만세를 외쳤던 여러 사람들, 특히 기생들의 이야기부터 양반 가문의 큰 부잣집 아들이지만 자신의 기득권을 포기하며 공산주의 사상을 통해 독립운동에 투신하는 명보의 이야기, 명보의 친구이지만 별다른 시대의식 없이 적당히 친일 하며 호의호식하는 성수의 이야기, 옥희의 첫 연인이자 나중에는 굴지의 사업가가 된 한철의 이야기 등 근 현대사에 꼭 있었음직한 인물들의 이야기를 읽으며 그 시대를 생생하게 느낄 수가 있다.
어두운 터널을 통과해 나오는 것보다 신나는 것도 없거든. 슬플 땐 그걸 기억하렴
예단이모가 첫 상경한 옥희와 월향, 연화에게 해준 말이다. 이 말처럼 이 소설 곳곳에는 어두운 터널 같은 상황들이 있다. 우리의 자유를 빼앗긴 일제 강점기이니 오죽하겠는가. 하지만 그 안에서도 서로 사랑하고 어두움을 헤쳐나가는 우리 민족의 정신력을 보여준 것 같다. 우리도 슬플 때 이렇게 생각해 보면 어떨까. 지금 우리는 어두운 터널을 지나고 있을 뿐이야. 통과하면 신나는 일이 기다리고 있을 거야.
"다들 각자의 방식으로 용감한 거지."
옥희가 자주 다니던 카페 주인이 남몰래 독립운동을 지원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후 정호가 하는 말이다. 독립운동가들을 생각하면 거사를 일으켰다거나 독립투쟁을 한 사람들을 떠올리기 마련이지만 이렇게 독립운동은 특정한 몇몇 사람들만 한 것은 아니었다. 각자 다른 방식으로 본인이 할 수 있는 방법으로 수도 없는 사람들이 참여를 했을 것이다. 우리가 일제 강점기를 벗어나 광복을 맞이한 원동력에는 이런 끊임없는 저항들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이 작은 땅에서 어떻게 그리도 거대한 야수들이 번성할 수 있었는지 신비로울 따름이야.
작은 땅이지만 이 땅에서는 거대한 야수들이 살았었다. 한반도에 호랑이는 멸종되어 사라졌지만 아직 그 기상은 우리 민족에게 면면이 남아있어 쭉 이어져 오고 있음을 작가는 말하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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