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어 보지는 않았어도 이 책의 제목만큼은 모두들 들어 봤을 것이라 생각한다. 바로 진 웹스터의 '키다리 아저씨'이다.
이 책의 저자인 진 웹스터는 1876년 미국에서 태어나 1901년 배서 대학교에서 영문학과 경제학을 전공했다고 한다. 학창 시절부터 신문기자로 활동하며 글쓰기에 열정을 보였다고 하는데 아마도 이 책의 주인공인 주디의 대학 생활은 본인의 경험담에서 나온 것 같다. 일찍부터 교도소와 고아원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이와 관련된 인권활동을 펼쳤는데 이 책 역시 고아원 출신인 주인공을 내세워 이야기가 진행된다.
고아원에서 제일 맏언니인 제루샤 애벗은 이제 곧 고아원을 떠나야 할 처지이다. 그러던 차에 고아원의 한 후원자로부터 후원을 받게 됐다는 소식을 듣는다. 그 후원자는 이미 몇 명의 고아원 남자아이들을 대학에 보내 주었는데 제루샤가 쓴 '우울한 수요일'이라는 에세이를 읽고 그녀를 작가로 교육할 수 있도록 대학에 보내주겠다는 것이었다. 후원 조건은 좀 특이한데 한 달에 한 번씩 감사편지를 후원자에게 보내는 것이다.
이 후원자가 누구인지는 알 수 없으나 그의 그림자만 볼 수 있었던 제루샤는 그가 키 큰 사람임을 알고 키다리 아저씨라 부르며 편지를 보낸다. (제루샤는 본인의 이름이 맘에 들지 않아 하면서 주디라는 예명을 쓰기 때문에 이제부터는 그녀를 주디라고 하겠다.)
주디의 편지를 보면 매우 발랄하고 재미있다. 아무런 답장도 기대할 수 없고 의무적으로 편지를 써야 하는 상황인데 어떻게 이런 편지를 쓸 수 있는지, 정말 가족이나 친한 친구에게 쓰는 것 같다. 아마도 처음에는 이 편지가 읽히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에 정말 마음 편하게 일기처럼 쓴 것 같다.
조금 전 샐리 맥브라이드가 제 방문을 열어 고개를 들이밀고 말했어요.
"집이 너무 그리워서 못 견디겠어. 너도 그러니?"
저는 살짝 웃어 보이고 "아니, 나는 잘 이겨낼 수 있을 것 같아"라고 대답했어요.
적어도 향수병은 저한테 해당 사항 없으니까요. 고아원이 그리워 병에 걸린 사람이 있다는 말은 들어본 적이 없거든요. 그렇지 않나요?
고아원 생활밖에 해보지 않은 제루샤에게 대학 생활은 모든 것이 새롭고 낯설다. 때로는 친구들에게 고아원 출신인 것이 드러날까 봐 노심초사하기도 하는데, 대학 생활만큼은 평범한 소녀이고 싶은 그녀의 소망 때문이다. 하지만 특유의 쾌활하고 낙천적인 성격으로 잘 헤쳐 나간다.
같은 동급생 줄리아의 삼촌인 저비스를 만나게 되고 그와 점점 까까워지게 된다. 여름방학 동안 후원자의 소개로 록 윌로우 농장에서 지내게 된 주디는 이곳이 원래 저비스의 소유였다는 것을 알게 되지만 그냥 신기하게만 생각할 뿐 별다른 의심은 하지 않는다. 하지만 독자들은 이 부분을 읽는 순간 키다리 아저씨의 정체가 저비스가 아닐까 생각할 것이다.
그렇지만 어떤 일이 있어도 저는 그걸 돌려드려야 했답니다.
저는 다른 여자아이들과 다르잖아요.
그 애들은 사람들에게 자연스레 뭔가를 받을 수 있어요.
대학 생활 동안 공부도 열심히 하고 글도 쓰며 주디는 점점 성장해 간다. 주디는 후원받은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지 않고 다 갚을 수는 없겠지만 어떻게 해서든 갚으려고 노력한다. 한 번은 주디가 장학금을 받게 되고 주디는 키다리 아저씨에게 빚을 갚게 됐다고 좋아하지만 후원자는 그것을 원하지 않는다. 그러나 고집 센 주디는 이미 빚을 갚으리라는 마음을 먹고 있었고 끝까지 자신의 생각을 밀고 나간다.
그리고 저는 제 자신이 누군지도 모른다고 설명하는 게 정말 싫었어요.
주디는 저비스에게 청혼을 받는다. 그러나 주디는 고아인 자신의 상황 때문에 그에게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청혼을 거절한다. 그리고 자신의 진심을 키다리 아저씨에게 편지로 보낸다. 한편 키다리 아저씨가 그녀를 만나고 싶어 한다는 전갈을 받고 그를 찾아간 후 그 후원자가 저비스였음을 알게 된다.
이 책을 읽는 내내 입가에 잔잔한 미소가 일었다. 그냥 뻔한 신데렐라 같은 이야기로 치부하기에는 주디의 편지가 너무 귀엽다. 만약 주디가 후원자에게 사우적인 감사편지만을 보냈으면 어떻게 됐을까? 아마 그 후원자는 그녀를 별로 궁금해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저비스는 귀엽고 사랑스러운 주디의 편지를 읽으면서 대체 어떤 아이인지 궁금해졌을 것이다. 또한 후원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스스로 일어서려고 노력하는 주디의 모습에 많은 매력을 느꼈을 것이다. 밝고 긍정적인 태도가 그녀에게 이런 행운을 가져다주었음에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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