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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기록

앵무새 죽이기(하퍼 리, 열린책들)

by nice dream 2024. 2. 21.

앵무새 죽이기 - 하퍼 리
앵무새 죽이기

 

앵무새들은 인간을 위해 노래를 불러 줄 뿐이지.
사람들의 채소밭에서 뭘 따먹지도 않고,
옥수수 창고에 둥지를 틀지도 않고,
우리를 위해 마음을 열어 놓고 노래를 부르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하는 게 없어.
그래서 앵무새를 죽이는 건 죄가 되는 거야.

 

오래전 읽었던 '앵무새 죽이기'를 다시 꺼내 들었다. 아마 이번까지 한 세 번쯤은 읽은 것 같다. 하지만 너무 오래전에 읽은 책이라 번역도 새롭게 바뀌고 내용도 많이 잊어버려서 다시 새로운 책을 읽는 느낌으로 읽을 수 있었다. 

이 책은 스카웃(진 루이즈 핀치)이라는 어린 소녀의 눈을 통해 메이콤이라는 마을에서 일어나는 일들과 스카웃의 아버지인 변호사 애티커스 핀치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스카웃은 여름방학이면 젬 오빠 그리고 친구인 딜과 함께 몰려다니며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스카웃의 집 너머에는 래들리 집안이 살고 있는데 그 집에는 예전부터 집에 틀어박혀 나오지 않는  '부 래들리'가 있다. 그는 10대 때 불량한 친구들과 어울리다 마을에 작은 물의를 일으킨 이후 집에만 머물면서 절대 밖을 나오지 않는 사람이다. 하지만 굳게 닫힌 그의 집은 아이들에게  으스스한 느낌을 주고 부 역시 공포의 대상이다. 아이들은 그 집에 손을 대고 오는 것으로 담력을 시험하기도 하고 부를 바깥으로 끌어내 보려고도 하지만 그 집은 굳게 닫혀 있을 뿐이다. 

한편 아버지인 핀치 변호사는 새로운 사건을 맡게 되는데 그것은 흑인인 '톰 로빈슨'을 변호하는 일이다. 그는 백인인 유얼집안의 장녀 메이엘라를 강간했다는 죄목으로 수감 중이다.  사실 톰은 억울한 누명을 쓴 것이었지만 당시 인종차별이 극심한 상황에서는 그런 의혹만으로도 충분히 사형선고가 가능한 일이었다. 흑인을 변호하려고 했다는 이유로 핀치는 협박을 받고 주변 사람들에게서도 톰을 변호해서는 안된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하지만 그는 양심을 속일 수 없다며 스카웃에게 이렇게 말한다.

"사람들이 그 사람을 변호해선 안 된다고 하는데 왜 하시는 거예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 가장 중요한 이유는, 내가 그 일을 하지 않는다면 읍내에서 고개를 들고 다닐 수 없고, 이 군을 대표해서 주 의회에 나갈 수 없고, 너랑 네 오빠에게 어떤 일을 하지 말라고 다시는 말할 수조차 없기 때문이야."

 

톰 로빈슨의 재판이 시작되고 핀치는 끝까지 배심원들을 설득하려고 노력하지만 결국에 톰은 유죄를 받는다. 아이들은 죄가 없는 톰이 왜 유죄를 받아야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 상황에 충격을 받는다.

아직 저 애의 양심은 세상 물정에 물들지 않았어. 하지만 조금만 나이를 먹어 봐. 그러면 저 앤 구역질을 느끼지도 않고 울지도 않을 거야. 어쩌면 세상에서 옳지 않은 일을 봐도 울먹이지 않을 거야. 앞으로 몇 년만 나이를 더 먹어봐, 그렇게 될 테니.

 

하지만 이웃인 모디 아줌마는 이것 역시 조금이나마 진보한 것이라며 아이들을 위로한다.

애티커스 핀치는 이길 수 없어, 그럴 수 없을 거야, 하지만 그는 그런 사건에서 배심원들을 그렇게 오랫동안 고민하게 만들 수 있는 이 지역에서 유일한 변호사야. 그러면서 나는 또 이렇게 혼자서 생각했지. 우리는 지금 한 걸음을 내딛고 있는 거야, 아기 걸음마 같은 것이지만 그래도 진일보임에는 틀림없어.

 

밥 유얼은 재판에서 백인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비록 이기기는 했지만 다른 사람들에게 공개적으로 망신을 당했다 생각하여 애티커스에게 앙심을 품는다. 그리고 언젠가는 그를 해치우겠다고 협박한다. 애티커스는 그의 말을 대수롭게 생각하지 않지만 아이들은 그를 걱정한다. 하지만 밥 유얼은 애티커스가 아닌 젬과 스카웃에게 복수를 하는데 그는 끝까지 비열한 사람이었던 것이다.  헬러윈 축제에 참여하고 돌아오는 밤에 아이들은 밥 유얼에게 습격을 당하고  젬은 팔이 부러지는 큰 부상을 입지만 '부 래들리'의 도움으로 위기에서 벗어난다. 결국 밥 유얼은 자기 칼에 찔려 목숨을 잃는다. 스카웃은 그동안 공포의 대상으로 여겼던 부 래들리 역시 우리의 이웃이었음을, 그리고 아이들이 자라나는 과정을 조용히 지켜보고 있었음을 깨닫는다.

이웃 사람들은 누가 죽으면 음식을 가져오고, 누가 아프면 꽃을 가져오고, 그 중간에 해당하는 일에는 자질구레한 것들을 가져옵니다. 부 아저씨는 우리 이웃이었습니다. 아저씨는 우리에게 비누로 깎은 인형, 고장 난 시계와 시곗줄, 행운을 가져다준다는 동전 두 닢 그리고 우리의 생명을 가져다주셨습니다. 이렇게 선물을 받으면 이웃 사람들은 답례를 하기 마련이지요. 그런데 우리는 그때까지도 그 나무에서 얻은 것도 도로 돌려주지 않았던 겁니다. 그래서 나는 슬펐습니다.

 

이 책에서 나오는 톰 로빈슨이나 부 래들리는 바로 앵무새와 같은 사람이다. 그들은 아무에게 해를 끼치지도 않고 조용히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그러나 인종이 다르다는 이유로, 사람들과 어울리지 않다는 이유로 사람들은 그들을 차별하고 오해한다. 나 역시 일상생활에서 우리와 비슷하지 않다는 이유로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지 않았나 돌아보게 되었다. 그리고 핀치 변호사를 통해 양심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지켜 나가는 삶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되었다.

아빠의 말이 정말 옳았습니다.
언젠가 상대방의 입장이 되어 보지 않고서는 그 사람을 정말로 이해할 수 없다고 하신 적이 있습니다.
래들리 아저씨네 집 현관에 서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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