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예전에 읽었던 책들을 다시 꺼내서 읽어보고 있다. 이 책도 마찬가지로 한 십여 년쯤 전에 읽었던 것 같은데 다시 읽어보니 뭔가 또 새롭다. 잊어버린 내용들도 다시 생각나고, 이런 내용이 있었나 싶은 이야기들도 눈에 보인다. 전에 읽었을 때는 미처 생각하지 못한 것들도 떠오르고 그동안 내가 얼마나 성장했는지 알아볼 수 있는 기회가 되는 것도 같다.
디스토피아를 그린 소설의 대표적인 소설로 조지 오웰의 '1984'와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가 종종 꼽힌다. 1984는 개인의 자유가 억압된 전체주의적인 미래를 그렸다면 멋진 신세계는 사회의 안정과 행복을 위해 태어날 때부터 행동 조절과 암시된 교육을 받고 사회의 소모품으로 취급되는 사람들이 나온다. 알파, 베타, 감마, 델타, 엡실론 등의 등급이 나오는데 알파와 베타는 상위 등급에 있는 사람들로 자유롭고 인간적인 생활을 하지만 감마, 델타, 엡실론 등은 점점 아래로 내려갈수록 체격도 작고 더 단순한 업무만 맡아서 한다. 그리고 이 낮은 등급의 사람들은 오로지 단순 노동을 하는 것에 만족하고, 일을 마친 후에는 소마라고 불리는 마약과도 비슷한 약을 지급받아 행복감을 얻을 수 있다. 모르는 것이 약이라고 하는 말처럼 그들은 더 나은 인간적인 삶에 대해 알 수 있는 지능도 없고 알고싶어하지도 않기 때문에 행복한 것이다.
"강철 없이는 자동차를 만들 수가 없어요. 반사회적인 불안정 없이는 비극을 만들 수 없고요. 지금 세계는 매우 안정되어 있고 사람들은 행복합니다. 그들은 원하는 것을 얻고 있으며 얻을 수 없는 것은 결코 원하지 않아요. 그들은 부유한 생활을 하고 있으며, 병이 나는 일도 없고, 죽음을 두려워하지도 않아요. 다행히도 정열이나 노령 같은 것을 모르고 있지요. 또 아버지나 어머니 같은 것으로 괴로워할 일도 없어요. 부인이나 아이들, 감정을 강력하게 지배하는 연인도 없고요. 그렇게 그들은 행동조절을 받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행동조절을 받은 대로 행동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만약 일이 잘못되면 소마가 그 일을 대신해 주죠."
이 책에는 소위 문명인들과 대비되는 '존'이라는 야만인이 등장한다. 존의 어머니는 원래 베타등급이었지만 야만인 보존구역에서 관광을 하다 불의의 사고로 문명사회로 돌아가지 못하고 존을 낳고 야만인들과 함께 살게 된다. 존은 야만인들 사이에서도 환영받지 못하고 배척당하는데 어느 날 그곳을 방문한 버나드와 레니나를 통해 문명사회에 발을 들이게 된다. 그들과 함께 가는 기쁨에 존은 이렇게 이야기한다.
"오, 멋진 신세계! 오, 이와 같은 사람들이 살고 있는 멋진 신세계. 자, 곧 출발합시다!"
하지만 막상 존이 맞닥뜨리는 문명사회는 그의 생각과는 전혀 다른 세계였다. 성적으로 타락하고 인위적인 행복만을 얻을 수 있는, 예술과 종교도 부정하고 격정적인 감정이나 슬픔 등 인간적인 것들이 모두 사라진 그냥 가짜 세계일 뿐이다.
"나 같으면 당신이 누렸던 거짓 행복보다는 차리리 불행을 택하겠어요."
"네, 그래요. 불행해질 권리를 주장하고 있습니다. 늙어서 추해지고 무능해질 권리는 말할 것도 없고, 매독과 암에 걸릴 권리, 기아의 권리, 더러워질 권리, 내일 일어날 일에 대해 끊임없이 걱정할 권리, 장티푸스에 걸릴 권리, 말할 수 없는 온갖 고통에 시달릴 권리......"
존이 생각하는 진짜 세상은 아마 이런 곳일 것이다. 불편하고 힘들기도 하겠지만 기쁜 일이 있으면 불행도 있는 법이고 서로 웃고 울고 인간다운 감정을 나눌 수 있는 그런 곳 말이다. 고통 없이 얻어지는 행복은 진짜 행복이 아닌 것이다. 기술이 발달하면서 조금 더 편리해지고, 질병을 정복하고 불행의 요소들을 조금씩 줄일 수는 있겠지만 아예 인간의 감정이나 생각을 조작하여 가짜 행복을 심어준다면 그 인생에 무슨 의미가 있을까.
존은 문명세계에 환멸을 느끼고 어머니인 린다마저 죽자 그곳을 떠나 홀로 전원생활을 한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를 가만히 놓아두지 않는다. 그가 스스로 고통을 가하는 모습을 사람들은 신기하게 생각하고 그 장면은 몰래 촬영되어 영화가 된다. 영화를 본 더욱더 많은 사람들이 그를 찾아오고 구경거리가 되자 결국 존은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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