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를 좋아하지 않더라도 시간여행에 관한 소설이나 영화는 쉽게 접할 수 있는 소재다. 그리고 이 시간여행을 가능하게 해주는 기계의 대명사는 타임머신이다. 타임머신이라는 말은 1895년 발표한 허버트 조지 웰스의 동명의 소설 '타임머신'에서 처음 등장한 말로 이미 발표된 지 이미 백여 년이 넘은 소설이지만 아직까지도 이 타임머신이라는 용어와 개념은 계속 살아남아 여러 작품의 단골 소재로 사용되고 있다.
그 기계는 운전자의 의향에 따라 공간과 시간의 모든 방향으로 여행할 수 있어.
어느 저녁 시간 여행자의 집, 여러 사람들이 모여서 식사 후 담소를 나누고 있다. 시간 여행자는 시간을 여행할 수 있는 새로운 기계를 만들었다고 이야기하지만 사람들은 다들 믿지 않는다. 그렇게 일주일이 지나고 다시 시간 여행자의 집에 모인 사람들은 처참한 몰골로 돌아온 시간 여행자를 발견한다. 그리고 사람들에게 자기가 그간 겪은 시간여행 이야기를 들려준다.
타임머신을 타고 802,701년의 미래에 도착한 시간 여행자는 아름답고 연약하게 생긴 소인들인 엘로이를 발견한다. 먼 미래의 사람들이라면 학식이나 예술 등 모든 면에서 경이로울 정도로 앞서있을 것이라 기대했지만 천진하고 바보스러운 모습의 소인들에게 시간 여행자는 크게 실망한다. 곳곳에 발달한 문명의 흔적을 발견하기도 하지만 그것들 역시 폐허로 변해있다. 시간 여행자는 쇠퇴기에 접어든 인류를 조우한 것이다.
미래인들의 왜소한 육체와 지력 부족, 그 허다한 거대 폐허들을 생각한 나는
자연을 완벽하게 정복했구나 하는 확신을 가지게 되었다.
자연을 완전히 정복하고 풍요롭게 사는 엘로이들은 더 이상 강한 육체와 치밀한 사고가 필요하지 않게 되었다. 그들은 점점 체격이 작아지고 성격도 온순해진다. 또한 남성성 여성성이 사라져 서로 비슷비슷한 사람처럼 보인다. 노동도 더 이상필요하지 않고 다들 모여서 어린아이처럼 행복하게 노는 것이 주된 일과로 보인다. 하지만 그 결과는 예술적 충동조차 사라진 권태로운 사회가 된다.
하지만 그들이 아무런 생산활동도 하지 않음에도 의복이나 음식 등이 어떻게 공급이 되고 있는지 의문이 생긴다. 또한 엘로이들은 어둠이나 그림자, 검은 것들에 대한 공포심을 가지고 있다. 무엇인가 다른 존재가 있음을 눈치챈 시간 여행자는 탐험을 하다가 지하세계에 살고 있는 '몰록'을 발견한다. 그리고 엘로이들은 지배계급, 몰록은 지하에서 엘로이들을 위해 노동을 제공하는 피지배계급이었음을 깨닫는다. 하지만 그런 관계도 이미 오래전에 끝난 이야기이다.
개미 같은 몰록들에 의해서 보존되었다가 나중에 잡아먹히는
이 엘로이들은 살 찌운 축우와 다름없다.
엘로이들이 주인이고 지배계급인 줄 알았지만 사실은 그 반대였다. 한때는 몰록을 지배하고 온갖 허드렛일을 시키고 살았겠지만 그 달콤함에 빠져 퇴보한 지능과 육체능력으로 이제는 완전히 상황이 바뀌어 버린 것이다. 몰록들이 엘로이를 잡아먹기 위해 기르고 있었다는 충격적인 사실을 마주한다.
지성은 자살한 것이다. 끊임없이 편리와 안락을 추구하고 안전과 영속을 모토로 한
조화로운 사회를 모색한 인류의 지성은 마침내 그 이상에 도달했으나 결국 이렇게 되고 말았다.
과학기술은 인간의 편리를 도모하는 쪽으로 계속 발전한다. 어떻게 하면 더 편하고, 더 빠르게 힘들이지 않고 어떤 일을 처리할 수 있을지에 초점을 맞춰져 있다. 하지만 무조건 편하다고만 해서 무비판적으로 과학기술을 수용하고 맹종하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일까? 지금도 디지털 기기에 지나치게 의존하면서 기억을 잘하지 못하는 디지털 치매라 불리는 증상들을 종종 볼 수 있다. 짧은 거리도 차로 이동하고 하루종일 스마트 기기에 의존하다 보니 체력도 점점 떨어진다. 우리의 모습도 엘로이에 점점 가까워지는 것은 아닌지 한번 생각해 볼 일이다.
과학 소설을 읽다 보면 먼 미래를 내다보는 작가의 통찰에 깜짝 놀랄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지금도 읽힌다는 것 자체가 작가가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가 아직까지 유효하다는 뜻일 것이다. 물론 작가의 생각처럼 우리의 미래가 그렇게 비관적이지는 않겠지만 그렇게 되지 않기 위해서는 이런 경고를 그냥 지나치면 안 될 것이다.
'독서 기록' 카테고리의 다른 글
고통 구경하는사회(김인정, 웨일북) (0) | 2024.01.22 |
---|---|
AI는 세상을 어떻게 바꾸는가(장동선, 김영사) (0) | 2024.01.08 |
명작을 읽는 기술(박경서 지음/ 열린책들) (1) | 2023.12.21 |
글쓰는 인간을 위한 두번째 뇌, 제텔카스텐(숀케 아렌스, 인간희극) (0) | 2023.12.15 |
필경사 바틀비(허먼 멜빌, 새움출판사) (1) | 2023.12.0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