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소년이 살던 마을에는 '좀머'라는 아저씨가 살고 있었다.
그는 하루 종일 온 마을을 걸어 다닌다. 모든 사람이 그를 알지만 그의 이름만 알뿐 직업이 무엇인지, 과거에 무슨 일을 했는지에 대해서는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 그냥 하루종일 쉬는 날도 없이 무작정 걸을 뿐이다.
우박이 떨어지던 날 아버지와 차를 타고 가던 소년은 앞서 걸어가는 좀머 씨를 발견하고 아버지는 그에게 차에 타라며 말을 건넨다. 하지만 좀머 씨는 앞만 보며 묵묵히 걸어가기만 하고 그런 그에게 아버지는 '그러다가 죽겠어요!'라는 말을 던진다. 그리고 소년은 처음으로 그의 입에서 똑똑하게 문장 한마디를 듣는다.
그러니 제발 나를 좀 그냥 놔두시오!
그가 무엇 때문에 하루종일 걷게 되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작품의 시기적인 배경이 제2차 세계대전 이후라는 것을 보면 전쟁의 트라우마가 있지 않았나 생각이 들기도 한다.
소년은 성장하면서 여러 가지 상처받는 일을 겪기도 하고 때로는 엉뚱한 생각을 하기도 하는데 그럴 때 우연히 좀머 씨를 마주치게 되고 강렬한 인상을 받는다.
난 내가 어떻게 그런 바보 같은 생각을 했는지도 기억할 수 없었다. 그까짓 코딱지 때문에 자살하다니! 그런 어처구니없는 생각을 했던 내가 불과 몇 분 전에 일생을 죽음으로부터 도망치려고 하는 사람을 보지 않았던가!
그리고 몇 년 뒤 소년은 우연히 좀머 씨가 호수에 걸어 들어가는 모습을 마지막으로 목격하게 된다. 얼마 후 좀머 씨가 없어졌다는 사실을 마을 사람들도 알게 되지만 금방 잊혀버리고 소년은 침묵을 지킨다.
좀머 아저씨는 가끔씩 사람들 눈에 띄기는 하였지만 사람들의 의식 속에서는 존재하지 않는 인물이었다.
이 책의 삽화를 그린 '장자크 상페'는 어렸을 때 '꼬마 니콜라'라는 책으로 접한 적이 있다. 그의 그림은 결고 가볍지만은 않은 책의 분위기를 동화적이고 무엇인가 아련한 어릴 적 감성으로 돌아가게 만든다.
일생을 죽음으로부터, 또는 무엇인가로부터 도망치듯 걸어가기만 했던 좀머 씨는 이제 마음의 평화를 얻게 되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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